서울 부암동과 평창동 나들이 by 이용구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나섰다.
여행은 즐겁고 설레야 한다. 다시 생각해봐도 설렘은 없다. 이런 낭패다. 오늘은 그렇고 그런 하루일 것이다. 그러나 큰 걱정은 없다. 오랫동안 그랬으니…….

내게 여행의 설렘은 무엇일까? 아마 공항의 면세구역이 아닐까? 필요한 것은 없어도 양주 코너나 전자제품 코너는 반드시 들른다. 마치 꼭 사야하는 것처럼 진지한 표정을 짓곤 한다. 그러다 판매원이 말이라도 붙일 듯싶으면 자리를 피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오늘은 면세구역도 없다. 마을버스에서 내리는데 저만큼 비둘기가 인도에 똥을 싸고 뒤뚱거리며 나를 힐끗 쳐다본다. 이놈의 비둘기 새끼. 그때, 뒷모습 비율이 훌륭한 아가씨가 뾰족 구두를 신고 나를 급히 지나쳐 간다. ‘어~ 똥 밟는다!’ 아슬아슬하게 뾰족한 뒷굽이 똥을 비켜간다.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새똥이 나를 기분 좋게 하다니. 사실 새똥은 하찮은 게 아니다. 알고 보면 새똥 때문에 전쟁을 벌인 세계 역사도 있다. 새똥 성분인 구아노(Guano) 때문에 페루가 전쟁에 휩싸였었다. 영국과 프랑스를 등에 업은 칠레는 페루의 수도까지 쳐들어가 페루를 초토화시켰었단다. 괜히 새똥에게 의미 부여를 해본 아침이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바라본 석파정(사진 가운데 기와집)이다. 석파정은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가을에는 곱고 화려한 단풍을 볼 수 있다. 석파정과 붙어 있는 서울미술관을 둘러보고 님과 함께 이곳마저 거닐면 좋겠다.>



오늘 일정은 윤동주 문학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는 매화가 한창이다. 매화는 우리 선비들이 좋아하는 사군자 중 하나이다. 삭막한 겨울을 지나 앙상한 가지에 빼꼼빼꼼 튀어나와 웃음 짓는 꽃이 가련하지만 든든하다.


<매실나무. 쓰임새가 많은 나무들이 그렇듯이 매실나무도 꽃과 열매에 고유의 이름이 있다. 꽃은 매화, 열매는 매실로 불리 운다.>

  
       

        
<매화 꽃가루가 꽃밥에 붙어 있는 모습(위, 광학현미경 100배)와 매화 꽃가루(아래, 400배)로 관찰한 모습이다. 마치 커피 원두와 같아 보인다.>


한줌의 봄바람이  성벽을 타고 올라와 내 눈을 덮쳤다. 눈물이 난다찬바람도 아닌데 눈에서 눈물이 난다. 고향집에 살았던 제리가 생각난다. 코는 들창코로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개다. 아마 종류가 ‘퍼크(Pug)’일 듯싶다. 제리도 죽기 전에 눈에 촉촉이 눈물이 흐르곤 했다. 젊어서는 눈을 보호하는 눈물이 8~10초마다 마르지만 늙으면 안구건조증 환자처럼 2~4초마다 마른다. 안구건조증이 심해져서 눈물흘림증이 동반된 것이다. 나도 같은 포유동물인지라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괜히 제리가 보고 싶어진다. 그렇게 구박을 했건만.



여행 가이드의 높고 힘찬 목소리는 나를 기분 좋게 한다. 무슨 말이든 나를 위해 저렇게 꾸준히 반복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은 최근 기억에 없다. 물론 나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오랜 만에 위로 받는 느낌이다. 고맙습니다.

오늘은 귀와 눈이 호강한다. 부암동의 길과 사람, 건물, 그리고 풍경도 좋지만, 봄꽃을 마음껏 보았다. 그리 바쁜 인생도 아닌데 그동안 너무 못보고 살았구나. 좋은 풍경도 마음이 좋은 상태여야  마음에 들어오나 보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배경이었던 카페 ‘산모퉁이’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다. 날씨가 좋아 시야가 탁 트였다. 그녀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긴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이다.>



오늘 같이 한 여행 작가들은 호기심 많은 꿈나무이다. 이것도 흥미롭고 저것도 흥미롭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인생은 여행이라고 한다. 난 인생을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꿈도 꾸고 사랑도 하고 일도 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그 동력인 설렘이 없이 지냈다니 난 누구인가?

점심을 먹고 버스에 탔다. 경복궁 버스 정류장 앞 커피숍에서 처음 보았던 콰테말라 자수를 놓으시는 이승희 선생님이 내게 까만 봉지의 콩비지를 맡기셨다. 내겐 가방이 있으니. 남의 물건을 맡는 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물건이든 책임감이 따른다. 반드시 잘 보관하고 있다가 큰 무리 없이 돌려드리리라 다짐을 하고 가방에 넣어 두었다.

오후 일정은 평창동이다.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으리으리한 S씨의  저택 옆에서 단체사진을
찍자고 하니 교수님이 빈정 상하신다고 싫다고 하신다. ‘후후, 나와 같은 부류이네’ 괜히 친해지고 싶다. 최근 뇌과학에서는 거울뉴런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이가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면 구하고 싶은 마음이 바로 이 거울뉴런 때문이라고 한다. 공감뉴런이라고 번역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사람이 살면서 사랑도 하고 일도 놀이도 하지만, 남을 위한 이타적인 행동은 거울뉴런 때문이다. 나와 피 한 방울도 안 섞였지만 걱정하고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고 그래서 같이 하려는 행동이다. 이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경쟁에서 이겨야 하지만 서로 공감하고 연대하는 능력도 있어야 성공적인 삶이라고 하겠다. 나이가 들어가는 요즘은 이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 든다.



<‘나리 나리 개나리’라고 부르던 개나리가 바로 이 개나리이다. 평창동을 지나는 길에 개나리를 보았다. 개나리는 씨로 번식이 힘들고 꺾꽂이를 해야 한다. 새끼 치는 방식이 독특하다.>



서울 북쪽의 방어를 위한 군량창고 터인 평창터에서 하루의 일정이 마무리 되었다. 오랜만에 봄나들이로 피곤하다. 오늘 하루의 공감을 확인하고 출출한 위장도 달래려는 꿈나무들은 치킨 집으로 향했다. 난 집에 가서 쉬고 싶다.

지하철을 탔다. 내 건너편에 앉은 아줌마가 물끄러미 날 쳐다본다. 왜 쳐다보냐고 묻고 싶지만, 모른 체했다. 요즘 날 쳐다봐주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싶다. 빚쟁이가 아니고서야. 아! 번득 가방에 든 콩비지가 생각났다. 어쩌나 다시 갈 수 도 없고 다음에 만나면 뭐라고 변명할까?

이 선생님, 전 콩비지를 좋아하지만 이 콩비지에는 마음을 두지 않았어요. 전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선생님!











#서울 종로구 여행, 부암동, 평창동, 새똥, 구아노, 윤동주문학관, 매실나무, 매화, 매실, 매화 꽃가루 현미경사진, 매화 꽃밥 현미경사진, 안구건조증, 커피프린스 1호점, 콩비지, 개나리, 석파정, 서울미술관